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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조씨] 조원명(趙遠命)

작성일 : 2019-09-09 11:25

1675(숙종 1)1749(영조 25) 자(字)는 치경(致卿), 시호(諡號)는 정간(貞簡), 직장(直長) 기수(祺壽)의 아들. 1702년(숙종 28)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710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이듬해 정언(正言)이 되고, 지평(持平)․수찬(修撰)을 지냈다.

1722(경종 2) 부교리(副校理)․헌납(獻納), 이듬해 사인(舍人)․집의(執義)․사간(司諫)을 지내는 동안 소론(少論)의 온건파에 속했다. 1724(경종 4) 노론(老論)이 재집권하자 부응교(副應敎)에서 문외출송(門外黜送)되었다가 1727년 정미환국(丁未換局)에 소론이 다시 집권하자 이조 참의(吏曹參議)에 발탁(拔擢)되었다.

이어 부제학(副提學)․동부승지(同副承旨)를 역임, 이듬해 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가 되고, 이어 공조 참의(工曹參議)로서 양역법(良役法)의 개정과 균역법(均役法)의 실시에 힘썼다.

그뒤 대사헌(大司憲)․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부제학(副提學)을 지낸 뒤 1723년 함경도 관찰사(咸鏡道觀察使)로 선정을 베풀고 조와 예조의 참판(參判)에 이어 평안도 관찰사로 이도 확립(吏道確立)과 재정의 충실을 기했다. 1740년 공조참판(工曹參判), 1744년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이 되고, 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공조 판서(工曹判書)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