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9-09 11:26
1677(숙종 3)~1732(영조 8) 자(字)는 신여(愼汝), 첨정(僉正) 태수(泰壽)의 아들.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후 영소전 참봉(永昭殿參奉)이 되고, 세자익위사 시직(世子翊衛司侍直)․호조 좌랑(戶曹佐郞)을 지낸 뒤, 함양 군수(咸陽郡守)․청풍 부사(淸風府使)․능주 목사(綾州牧使) 등을 역임했다.
1728년(영조 4) 청주 목사(淸州牧使)가 되어 이인좌(李麟佐)의 난으로 피폐된 청주(淸州)의 민심을 안정시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글씨를 잘 썼으며 특히 전서(篆書)․주서(籒書)․팔분체(八分體)에 뛰어났고, 그림에도 능했다. 조상경(趙尙絅) 1681(숙종 7)~1746(영조 22)
자(字)는 자장(子章), 호(號)는 학당(鶴塘), 시호(諡號)는 경헌(景獻), 도정(都正) 도보(都輔)의 아들. 김창협(金昌協)의 문인. 1708년(숙종 34)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710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설서(說書)․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을 지냈다.
1720년(숙종 46) 헌납(獻納)을 거쳐 사간(司諫)․승지(承旨)․이조참의(吏曹參議) 등을 역임, 1722년(경종 2)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안주(安州)에 유배, 이어 아산(牙山)에 이배(移配)되었다. 1725년(영조 1) 풀려나와 함경도 관찰사(咸鏡道觀察使)로 부임, 선정을 베풀어 송 덕비(頌德碑)가 세워졌다.
1727년 정미환국(丁未換局)으로 노론(老論) 4대신의 관작이 추탈(追奪)되고 정 호(鄭 澔)․민진원(閔鎭遠) 등이 탄핵당하자 이를 항의하다 또 파직, 1729년 기용되어 대사헌(大司憲)이 되고, 1731년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후 병조․이조․공조의 판서(判書)에 이어 우참찬(右參贊)․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예조 판 서(禮曹判書)․판동령부사(判敦寧府事)․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