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9-09 11:42
1762(영조 38)~1824(순조 24) 자(字)는 덕여(德汝), 호(號)는 일곡(日谷), 시호(諡號)는 문충(文忠), 판서 환(瑍)의 손자, 서윤(庶尹) 진명(鎭明)의 아들. 1789년(정조 13) 춘당대문과(春塘臺文科)에 장원, 이해 초계문신(抄啓文臣)이 되고, 1795년 경기도 도사(京畿道都事)를 거쳐 수찬(修撰)․겸문학(兼文 學)을 지낸 뒤 1801년(순조 1) 예조․이조의 참의(參議)가 되었다.
1806년 형조 참판(刑曹參判)으로 우의정(右議政) 김달순(金達淳)을탄핵하여 유배시키고, 이조 참판(吏曹參判)을 거쳐 병조․이조․예조의 판서(判書)를 역임하고, 1808년 평안도 관찰사로 있을 때 암행어사(暗行御史) 서능보(徐能輔)의 탄핵으로 관하에 족징(族徵)의 폐해가 극심하다는 죄로 파직, 유배되었으나, 모친이 탄원하여 암행어사의 탄핵이 사감(私憾)에 의한 것임을 밝힘으로써 풀려 나왔다.
1810년 형조 판서(刑曹判書)․대사헌(大司憲)을 역임, 1812년 박종경(朴宗慶)이 척신(戚臣)으로 국정을 문란케 한다고 상소했다가 다시진도군(珍島郡) 금갑도(金甲島)에 유배, 1818년 전리(田里)에 방귀(放歸)되고, 이듬해 풀려나왔으나 모친상으로 은퇴, 1822년 우참찬(右參贊)․제학(提學)을 겸하고 이듬해 대사헌(大司憲)에 재임, 대호군(大護軍)에 이르렀다. 순조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