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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조씨] 조충(趙 沖)

작성일 : 2019-09-10 11:04

1171(명종 1)~1220(고종 7). 자(字)는 담약(湛若), 시호(諡號)는 문정(文正), 시중(侍中) 영인(永仁)의 아들. 음보(蔭補)로 벼슬에 올랐다가 성균관(成均館)에서 공부하여 명종 때 문과(文科)에 급제, 내시(內侍)에 임명되었다.

1211년(희종 7) 대사성(大司成)․한림학사(翰林學士)로서 동지공거(同知貢擧)를 겸임하고, 동북면 병마사(東北面兵馬使)․예부(禮部) 상서(尙書)를 거쳐 1216년(고종 3) 문무(文武)를 겸비했다 해서 추밀부사․한림학사 승지로서 상장군(上將軍)을 겸임하였다.

문관으로서 상장군(上將軍)을 겸한 일은 문극겸(文克謙) 이후 처음 이었다. 이해 거란병(契丹兵)이 북부에 침입하자 행영중군(行營中軍) 부원수(副元帥)가 되어 정숙첨(鄭叔瞻)의 휘하에서 출정, 이듬해 염주(鹽州 :연일군)에서 정방보(鄭邦寶)와 함께 거란병을 격퇴했으나 이어 태조탄(太祖灘)에서 대패하여 한때 파면되었다가 이듬해 서북면 병마사(西北面兵馬使)로서 인주(麟州)에 침입한 여진족(女眞族)을 대파하여 파면전의 관작(官爵)을 다시 받았다.

이해 수사공․상서(尙書) 좌복야(左僕射)에 임명되어 귀경(歸京)하였으나 곧 서북면 원수가 되어 김취려․정통보 등을 출정하여 거란군을 대파, 이듬해에는 몽고군(蒙古軍)과 연합하여 거란군이 웅거하는 강동성(江東城)을 공격하여 항복을 받았다.

이어 합진(哈眞)과 우호를 맺은 후 개선하고 정당문학(政堂文學)․판예부사(判禮部事)에 오르고, 곧 수태위(守太衛)․동중서문하시랑평장사(同中書門下侍郞平章事)가 더해졌다.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문하시중(門下侍中)에 추증(追贈)되었고, 고종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