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10-29 11:45
1683(숙종 9)~1741(영조 17). 자(字)는 군범(君範), 호(號)는 봉암(鳳巖)․삼환재(三患齋)․봉계(鳳溪)․사장와(舍藏窩),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使) 영용(領用)의 아들. 권상하(權尙夏)의 문인. 1716년(숙종 42)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왕자 사부(王子師傅)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1721년(경종 1) 세자시강원 자의(世子侍講院諮議)가 되었으나 역시 취임하지 않았다.
이 때 신임사화(辛任士禍)로 노론(老論)이 실각하자 김일경)(金一鏡) 등 소론(少論)의 죄를 논척(論斥)하는 상소(上疏)를 하고 구운산(九雲山)에 들어가 은거, 1725년(영조 1) 노론이 기용될 때 세자익위사부수(世子翊衛司副率) ․ 경연관(經筵官) 등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했다.
그 후 마지못해 부여 현감(扶餘縣監)․형조 좌랑(刑曹佐郞)․공홍도도사(公洪道都事)를 잠시 지냈다. 한원진(韓元震)․윤봉구(尹鳳九)․이간(李柬)등과 교유가 깊었으며, 조선후기의 성리학(性理學)의 대가로서 당시 심성론(心性論)으로 유학계(儒學界)가 호론(湖論)․낙론(洛論)으로 갈라져 논쟁을 벌일 때 한원진과 함께 호론에 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