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1(공민왕 10) 고려 충숙왕(忠肅王)때 문과(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봉상대부(奉常大夫)로 장령(掌令)․사성(司成)․예부 상서(禮部尙書)등을 역임한 후 1361년(공민왕 10) 해주 목사(海州牧使)로서 홍건적(紅巾賊)의 침입으로 포위된 수양성(首陽城)을 지키다가 적의 화공(火攻)으로성이 함락되자 탈출하여 휴암(鵂岩)에 이르러 관인(官印)을 바위밑 깊은 못에 던지고 투신 자결했다. 그후 못가에 충절비(忠節碑)가 세워지고 이름을 투인담(投印潭)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