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11-04 10:53
1454(단종 2)~1504(연산군 10) 자(字)는 연연(淵淵), 호(號)는 금남(錦南), 진사(進士) 택(澤)의 아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 1482년(성종 13) 진사(進士)로 친시문과(親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교서관(校書館)의 저작(著作)․박사(博士)․군자감 주부(軍資監主簿)․수찬(修撰)을 지냈다.
1486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을과(乙科)로 급제,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한 뒤 교리(校理)로「동국통감(東國通鑑)」「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등의 편찬에 참여했으며, 1487년 제주 추쇄경차관(濟州推刷敬差官)으로 부임했다가 이듬해 부친상을 당해 돌아오던 도중 풍랑으로 중국 절강성 영파부(浙江省寧波府)에 표류, 온갖 고난을 겪고 반년 만에 귀국했다.
즉시 왕명으로「표해록(漂海錄)」을 저술, 중국 연안의 해로(海路)․기후․산천(山川)․도로․관부(官府)․풍속․민요 등을 소개하였으며, 특히 수차(水車)의 제작과 이용법을 배워 뒤에 충청도 지방의 한발(旱魃) 때 이를 사용케 하여 많은 도움을 주었다.
1492년 지평(持平)에 올랐다가 사간(司諫)으로 전임, 1497년(연산군3) 성절사(聖節使)의 질정관(質正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무오사화(戊午士禍) 때 김종직의 문인으로 붕당(朋黨)을 조직하여 국정을 비방했다는 죄로 단천(端川)에 유배,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 禍)에 참형(斬刑)을 당했고, 뒤에 신원(伸寃)되었다. 통정대부(通政大夫)․승정원 도승지(承政院都承旨)에 추증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