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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주최씨] 최지몽(崔知夢)

작성일 : 2019-11-11 11:14

907(효공왕 11)~987(성종 6) 초명은 총진(聰進), 시호는 민휴(敏休), 원보상 흔(昕)의 아들. 남해영암군(南海靈岩郡) 출신. 대광(大匡) 현 일(玄 一)에게 글을 배워 경사(經史)에 통달하고, 특히 천문(天文)과 복서(卜筮)에 정통했다. 18세 때 왕건(王建 : 태조)에게 그 이름이 알려져 부름을 받아 왕건이장차 삼한(三韓)을 통일할 것이라는 해몽(解夢)을 함으로써 지몽(知夢)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공봉직(供奉織)에 등용되었다.

태조(太祖)가 3국을 통일 한 후 궁중에서 고문(顧問)으로 왕을 모셨으며, 945년(혜종 2) 사천관(司天官)으로 있을 때 왕 규(王 規)의 모반을 예언했고, 이해 정종(定宗)이 즉위한 뒤 모반이 진압되자 상을 받았다.

광종(光宗)때 귀법사(歸法寺)에 행차한 왕을 호종, 이때 술에 취하여 왕에게 예(禮)를 지키지 못했다하여 외걸현(외傑縣)으로 유배되었다가, 980년(경종 5) 풀려 나와 대광(大匡)․내의령(內議令)․동래군후(東萊郡候)․주국(柱國)이 되었다. 이때도 별을 보고 왕 승(王 承)이 모역(謀逆) 사건을 예언하여 이를 미연에 방지하게 했다.

982년(성종 1) 좌집정(左執政)․수내사령(守內史令)․상주국(上柱 國)에 올라 홍문숭화치리공신(弘文崇化致理功臣)이 호를 받았고, 그부모도 봉작(封爵)되었다. 987년(성종 6) 와병(臥病)했을 때 왕이 친히 문병하며 약을 내리고, 귀법사(歸法寺)와 해안사(海安寺)에 말 두필을 시주하고 3천 승려들로 하여금 불공을 드리게 했다. 태사(太師)에 추증(追贈), 경종(景宗)의 묘정(廟廷)에 배향(配享), 국암사(國岩 祠)와 동산사(東山詞)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