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11-12 10:35
868(신라 경문왕 8)~944(고려 혜종 1) 초명은 신지(愼之)․인곤(仁滾), 시호(諡號)는 문영(文英). 885년(헌강왕 11)에 당(唐)나라에 유학하여 문과에 급제한 후 909년(신라 효공왕 13) 귀국하여 집사성 시랑(執事省侍郞)․서서원 박사(瑞書院學士)가 되었다.
신라(新羅)가 망하고 고려가 개국되자 935년(태조 18) 태자 사부가 되고 문한(文翰)을 거쳐 원봉성 태학사(元鳳省太學士)․한림원령․평장사(平章事)를 지냈다. 77세로 사망하자 시호(諡號)와 함께 정광(正匡)에 추증되었다.
글씨와 문장(文章)이 뛰어났고, 유필로 낭원대사오진탑비(郎圓大師悟眞塔碑)․법경대사자등지탑(法鏡大師慈燈之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