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11-12 10:37
927(고려 태조 10)~989(성종 8) 시호(諡號)는 문정(文貞), 신라의 원보(元甫) 은함(殷含)의 아들. 12세에 논어(論語)를 읽는 것을 태조(太祖)가 보고 원봉성(元鳳省) 학사에 올렸다.
학문연구에 전심하여 982년(성종 1) 왕명에 의해 시무책(時務策) 28조를 올려 군제(軍制)의 개편, 과다한 불교행사 중지, 무역의 절제, 지방관제의 확정, 관복의 제정, 승려의 횡포엄금. 공역(貢役)의 균등,우상 철폐, 신분제도의 확립 등 전반적인 면에 걸쳐 폐단의 시정 및새로운 제도의 제정을 건의하여 고려왕조의 기초작업에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토호(土豪 : 지방에 웅거하여 재산과 세력이 있는 호족) 들의횡포에 의한 세공 수납의 피해를 시정토록하여 12목(牧)을 설치, 목사를 상주시켜 중앙집권적 체제를 갖추어 갔다. 988년(성종 7)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에 승진하고 청하후(淸河侯)에 봉해졌다. 벼슬에있는 동안 임금에게 올린 청(請)이 허락되지 않은 것이 없으며, 63세로 사망하자 왕이 매우 슬퍼하며 태사(太師 : 임금의 고문, 국가 최고의 명예직)를 추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