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11-12 10:52
1344 (충혜왕 복위 5)~1414(조선 태종 14) 자(字)는 직재(直哉), 호(號)는 관가정(觀稼亭),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문인(門人). 1360년(공민왕 9) 문과(文科)에 급제, 정당문학시랑(政堂文學侍郞)을 거쳐 검교정승(檢校政丞)에 올랐다.
평소 청렴결백하고 강직감언을 서슴지 않아 많은 고난이 따르기도했으며 신 돈(申 旽)의 지나친 적폐(積幣)를 과감하게 지적, 탄핵상소(彈劾上疎)를 올린 것이 화근이 되어 신주 감무관(信州監務官)으로 좌천되었다가 13 74년(공민왕 23) 첨의중찬(僉議中贊)을 제수받아 내직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1382년(우왕 8) 사복시정(司僕寺正)이 되어명(明) 나라에 사신(使臣)으로 가서 홍무(洪武) 황제로부터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下賜) 받았다.
고려(高麗)가 망하고 이태조(李太祖)가 왕위(王位)에 오르자 벼슬을 버리고 양주 풍양(楊洲豐壤)의 송산(松山)에 들어가 은거(隱居)하자 이성계(李成桂)가 좌찬성(左贊成)을 제수하고 그를 불렀으나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끝까지 지켜 이를 거절하자 태조(太祖)는 그 뜻을 가상히 여겨 송산(松山)을 어래산(御來山)으로 봉하고 그가살던 모옥에 관가정(觀稼亭)이란 제호(題號)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