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11-12 11:25
1894~1970 호(號)는 외솔. 한글 학자. 울산 출신. 경성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1910년부터 3년간 주시경(周時經)의 조선어강습원에서 한글과 문법을 배웠다. 1919년 일본 히로시마 고등사범학교(廣島高等師範學校)를졸업하고 중등학교 교원 자격증을 받았으나, 관공립고등보통학교 교원을 칭병사퇴(稱病辭退)하고 고향에서 휴양하면서 조선인 상권(商 權) 확보를 위하여 공동상회(共同商會)를 설립하였다.
1920년 사립 동래고등보통학교 교사가 되었다가 1922년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연구과에 다시 수학, 이어 교오토(京都) 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에서 교육학을 공부하고, 1925년 그 대학원에서 1년간 수업하였다.
1926년 연희전문학교 교수가 되고 1938년 흥업구락부(興業俱樂部) 사건으로 강제 사직되었다. 그동안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도 겸직하였는데 실직한 동안 한글 연구의 완성을 위해 「한글갈」을 발간하였고, 1941년 연희전문학교에 복직, 도서관에 근무하였다.
조선어학회 창립에 참여하고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 준비위원이 되고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제정 등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42년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광복때까지 3년간 옥중생활을 겪었다.
광복 후 미군정청 편수국장에 취임하여 교과서 행정을 담당, 그 기틀을 잡았으며 한글학회 상무이사, 이어서 이사장 등의 직책을 맡아 국어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1951년 다시 문교부 편수국장이 되었다가 1954년 연세대학교로 돌아가 교수․문과대학장․부총장 등을 역임하고 1954년 학술원 회원에 선임되는 한편, 1955년 연세대학교로부터 명예문학박사 학위를받았다.
1958년 학술원 부회장에 선출되었고 세종대왕기념사업회(世宗大王記念事業會)를 창립, 그 이사부회장으로 활약하였다. 1961년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되고, 같은 해 재단법인 연세대학교 이사에 추임하였으며 1964년 동아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을받았으며, 주요 저서에 「우리말본」「한글갈」「글자의 혁명」「나라 사랑의 길」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