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광지백(大匡之伯) 연안군(延安君) 22세손 운암공(雲巖公)의 손자 공(公)은 고려조 진 사(進士) 조선 태종(太宗)이 서용(敍用)의 은전으로 정이품직(正二品職)을 제수(除授)하니 공은 조고 (祖考)의 유지와 고려의 망국신하(亡國臣下)로 불사이군을 사수하기 위하여 경북순흥(慶北順興)으로 둔적(遁迹)하여 순흥(順興)에서 가성명(假姓名) 임성부(林成富) 혹은 임선생(林善生)이라 칭(稱)하면 서 재인(才人) 이종실(李宗實)의 집에 고용(雇傭)살이를 7년간 하고 자칭 과생거사(誇生居士)라 하며 해주(海州) 신광사(神光寺)에 사문(沙門)으로 5년을 지냈으며 그 후 귀향하여 별세하였다. 세종대 왕(世宗大王)이 황보인(皇甫仁)과 박팽년(朴彭年)의 진언으로 좌찬성(左贊成)에 추증(追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