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찾기

조상찾기

HOME > 조상찾기

[강릉최씨] 최이(崔 迤)

작성일 : 2019-11-26 13:47

1356(공민왕 5)~1426(세종 8) 초명(初名)은 원(遠), 자(字)는 유명(惟明), 시호(諡號)는 희경(僖景). 강릉군(江陵君) 유련(有璉)의 아들. 도평의 지인(都評議知印)에 초임(初任)된 후 1380년(우왕 6) 낭장(郎將)으로 규정(糾正)을 겸하고 지정선군사(知旌善郡事)를 거쳐 교주도 안렴사(交州道按廉使)가 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가 되었다.

이어 판도전법 총랑(判圖典法摠郞)․감문비순위 대호군․삼사 유윤(三司右尹)을 지내고, 이듬해 삼사 좌윤(三司左尹)으로서 방원(芳園 : 태종)의 심복이 되어, 1392년(공양왕 4)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에 오르고 조선 개국 후 중추원 우부승지(中樞院右副承旨)를 거쳐 좌승지(左承旨)가 되었다.

1394년(태조 3)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에 승진, 이듬해 경기좌도도관찰사 겸 병마도절제사, 1397년 완산부윤(完山府尹), 1400년(정종2) 중군 총제(中軍摠制)에 이어 좌군 총제(左軍摠制)로 대사헌을 겸했다. 1402년(태종 2) 전라도 도절제사(全羅道都節制使)가 되었고, 1404년 의정부 참찬(議政府參贊), 이듬해 공조 판서․중군 도총제(中軍都摠制)를 역임, 1406년 왜구(倭寇)의 침범이 잦자 특히 충청도 병마도절제사 겸 수군도절제사에 보직되었다.

1408년 길주도 도안무사(吉州道都安撫使), 이듬해 영진주목사(領晋州牧使), 1412년 판경승부사(判敬承府事)․형조 판서를 지내고 다음해 공조 판서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후 서북면도순문사(西北面都巡問使)로 평양부윤(平壤府尹)을 겸임, 이어 의정부 참찬(議政府參贊)․판우군부사(判右軍府事)․개성유후사 유후(開城留後司留後)․의정부 찬성사(議政府贊成事)․호조 판서를 역임했다. 1420년(세종 2) 경라 태종이 죽자 재기용되어 진향사(進香使)로 다녀와서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오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