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사랑참봉 공은 총예탁이(聰睿卓異) 한자질(姿質)과 천품(天稟)을 받아 일찍 외부(外傅)깨 나가 견해(見解)가 절윤(絶倫)하고 철문(綴文)과 속사(屬辭)에서 가끔 사람을 놀라게 하여 영예(英譽)가 자울 (藉蔚)하더니 나아가 약관(弱冠)에 이르자 장인인 신빙옹(愼聘翁)이 동계(桐溪) 정선생(鄭先生)의 추천으로 인하여 바야흐로 현달(顯達)한 자리에 있었으나 공은 염정(恬精)하고 스스로 지조(志操)를 지키어 일찍이 처가(妻家)가 영귀(榮貴)한 고로 진달(進達)을 구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조수(操守)의 고상함을 이로 미루러 가히 알 수 있었다. 후진교육과 창진을 했으니 향당의 사표가 되었다. 유재우(有齋宇)하니 옥산재(玉山齋)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