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12-04 13:46
1692(숙종 18)~1745(영조 21) 자(字)는 대이(大而), 호(號)는 창애(蒼厓). 시호(諡號)는 충헌(忠獻), 중하(重夏)의 아들. 1723년(경종 3)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1727년(영조 3) 정언(正言)을 거쳐 대사간(大司諫)이 되었으나 1729년 탕평(蕩平)의 폐단을 소진(疏陳) 했다가 온성 부사(穩城府使)로 좌천되었다.
뒤에 1732년 우승지(右承旨)가 되고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를 지낸 뒤 1734년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도승지 (都承旨)․호조 참판(戶曹參判)을 거쳐 1737년(영조 13) 대사헌(大司憲)에 승진, 조신(朝臣)들의 부패와 간관(諫官)의 무능을 비난함으로써 조정에 큰 파문을 일으켜 파직되었다.
이듬해 공조․병조의 참판(參判)을 거쳐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지의금부사(知議禁府事) 등을 지냈다. 좌찬성(左贊成)에 추증(追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