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12-04 13:47
1693(숙종 19)~1772(영조 48) 초명(初名)은 중흠(重欽), 자(字)는 석여(錫餘), 호(號)는 오천(梧泉), 시호(諡號)는 양효(良孝), 판서(判書) 만조(萬朝)의 아들. 1711년(숙종 37) 진사(進士)가 되고, 1713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 장령(掌令)․병조 참지(兵曹參知)를 거쳐 1747년(영조 23) 승지(承旨)가 되었다.
그 후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형조 참판(刑曹參判)을 거쳐 1753년 노인직(老人職)으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고 이듬해 공조판서(工曹判書)에 이르러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문장에 능했고, 만년에는「주역(周易)」을 연구, 많은 저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