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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홍씨] 홍양호(洪良浩)

작성일 : 2019-12-04 13:53

1724(경종 4)1802 (순조 2) 초명(初名)은 양한(良漢), ()는 한사(漢師), ()는 이계(耳谿), 시호(諡號)는 문헌(文獻), 진보(鎭輔)의 아들. 1747(영조 23) 진사(進士)가 되고, 1752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낸 뒤 1774년 등준시(登俊 試)에 병과(丙科)로 급제했다.

1777(정조 1) 홍국영(洪國榮)의 세도정치(世道政治)가 시작되어 그 횡포가 심해지자 경흥 부사(慶興府使)로 나갔다가 홍국영의 실각후 1781년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대사간(大司諫)을 지내고 이듬해 동지부사(冬至副使)로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후 대사헌(大司憲)․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 등을 역임, 1794년 동지 겸사은사(冬至兼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이조 판서(吏曹判書)가 되고 1799년 양관 대제학(兩館大提學)을 겸임, 1801(순조 1)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도 겸했다.

학문과 문장에 뛰어나 「영조실록(英祖實錄)」․「국조보감(國朝寶鑑)」․「갱장록(羹墻錄)」․「동문휘고(同文彙考)」 등의 편찬에 참여했고, 사신으로 중국에 갔을 때 대구형(戴衢亨)․기효람(紀曉嵐)등학자와 교유(交遊), 귀국 후 고증학(考證學)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지방관(地方官)으로 나가면 치산(治山)․식수(植樹)에 주력했고, 특히 통신사(通信使) 일행에게 의뢰, 1764(영조 40) 일본의 벚나무 묘목을 가져와 우이동(牛耳洞)에 심어 뒷날 경승지(景勝地)를 이루게 했다. 글씨에도 능했는데 특히 진체(晋體)․당체(唐體)에 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