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12-05 13:11
1407( 태종 7)~1467(세조 12) 자(字)는 계효(季孝), 호(號)는 췌부(惴夫), 시호(諡號)는 열성(烈成), 영의정 희(喜)의 3남. 1423년(세종 5) 사마시(司馬試)에서 시관(試官)에게 모욕을 당한 뒤 과거를 외면하고 분발하여 학문에만 힘썼다. 음보(蔭補)로 종묘서부승(宗廟署副丞)이 된 뒤 1431년(세종 13) 사헌부 감찰 (司憲府監察) 1432년 지평(持平) 겸 호조정랑(戶曹正郞) 1433년 장령(掌令) 등을 역임했다.
1437년 전라도 경차관(敬差官), 이어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 상호군(上護軍)등을 역임하고 1443년에 좌부승지(左副承旨)가 되었다.
1447년 도승지(都承旨)가 된 후 파당을 만들어 싸움을 조장한다는 무고를 받아 한때 삭직(削職) 당했다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한성부윤(漢城府尹) 병조참판(兵曹參判)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등을 거쳐 1455년(세조 1) 우참찬(右參贊)이 되어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으로 남원군(南原君)에 봉해지고, 좌참찬(左參贊)에 이어 좌찬성(左贊成)에 승진, 1457년 판예조사를 겸임했다. 1459년 충청도 도순문사(忠淸道都巡問使)가 되어 규휼에 공을 세워 보국숭록대부 남원부원군(輔國崇祿大夫 南原府院君)이 되었다.
1464년 명나라 황제 헌종의 즉위를 축하하는 진하사(進賀使)로 가게 될 때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우의정(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 右議政)에 임명되어 다녀왔고, 1466년 좌의정(左議政), 이듬해 영의정 (領議政)에 올랐다. 장수(長水)의 창계서원(滄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