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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황씨] 황진(黃 進)

작성일 : 2019-12-05 13:45

1550년(명종 5)~1593년(선조 26). 양정공 사효(事孝)의 증손. 자(字)는 명보(明甫) 호(號)는 아술당(蛾述堂), 시호(諡號)는 무민(武愍).

1576년(선조 9) 무과(武科)에 급제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1591년 통신사(通信使) 황윤길(黃允吉)을 따라 일본에 다녀와서 그들의 침공이 있을 것을 예언했다. 1592년 동복현감(同福縣藍)으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찰사를 따라 근왕병(勤王兵)을 이끌고 북상(北上) 용인(龍仁)에서 왜병과 접전 했다.

이어 진안(鎭安)에 침입한 왜적의 선봉장(先鋒將)을 사살하고 적군을 안덕원(安德院)에서 격퇴 하였으며 훈련원 판관(訓練院判官)이 되어 이치(梨峙) 싸움에서 적을 격퇴, 그 공으로 익산 군수 (益山郡守) 겸 충청도 조방장(忠淸道助防將)에 오르고 ,절도사(節度使) 선거이(宣居怡)를 따라 수원(水原) 에서 싸웠다.

이듬해 충청도 병마절도사(忠淸道兵馬節度使)에 승진, 적병을 쫓아 상주(尙州)에 이르는 동안 연승(連勝)했으며, 적의 대군이 진주(晋州)를 공략하자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 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와 함께 진주성(晋州城)에 들어가 고수(固守) 9일간이나 역전하다가 전사했다.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되고 좌찬성(左贊成)에 추중(追贈) 되었다. 진주의 창렬사(彰烈祠), 남원(南原)의 민충사(愍忠祠)에 배향(配享)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