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12-05 13:48
1682년(숙종 8)~1747년(영조 23). 소윤 보신(保身)의 9세손. 자(字)는 재수(再叟), 호는 백화재(白華齋).
1702년(숙종 28)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1723년(경종 3) 장령(掌令)이 되고, 영조(英祖) 초에 영광 군수(靈光郡守)를 지낸 뒤, 한때 사직하였다 .
1728년(영조 4) 종성 부사(鍾城府使)에 임명되어, 부임 도중 이인좌(李麟佐)의 반란 소식을 듣고 지평(砥平)에 이르러 영남 안무사(嶺南按撫使) 박사수(朴師洙)를 만나 함께 반란 평정에 공을 세웠다.
이때 영남에서 또 적변(賊變)이 있어 체포된 적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나와 구성(龜城)에 유배되고, 7년간 배소(配所)에서 성리학(性理學)을 연구 1736년 풀려나와 주계(朱溪)에 은거했다. 상주(尙州)의 봉산사(鳳山祠)에 배향(配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