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1340년~1388년) 자는 재중(在中)이고 호는 야당(埜堂)이다. 공민왕6년(1357) 염흥방방(廉興邦榜)에 급제하여 봉익대부 전리사판서 진현관제학(奉翊大夫典理司判書進賢館提學)을 지냈으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성품이 조용하고 정숙하여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즐겨보고 권세에 아부하지 않고 조준(趙浚), 윤소종(尹紹宗) 등과 더불어 친우를 삼고 경사(經史)를 강론하고 의서에 이르기까지 두루 통달하지 않음이 없었고 저술한 책도 많고 야당집(埜堂集)과 시문이 다수 있다.
향촌에서 물러나 재물을 아끼지 않고 약재를 수매하여 은혜를 널리 베풀고 여러 사람을 구제함으로 질병이 있는 자에게 존비(尊卑)를 구분 않고 치료하여 많은 생명을 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