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공민왕13년(1364)에 문과 급제하여 지제고 봉상시사로 봉직하다가 조선조에 들어와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지냈다.
14세 정경부인 양천허씨(貞敬夫人 陽川許氏):(1377년~1455년) 열부(烈婦)로서 대사헌(大司憲) 허응(許應)의 딸이다. 광산김씨(光山金氏) 20세손 김문(金問)에게 시집가서 17살에 홀로되어 부모가 불쌍히 여겨 개가(改嫁)를 시키려하자 유복자(遺腹子)를 데리고 개성(開城)에서 시댁이 있는 충청도 연산까지 걸어가는데 호랑이가 호위하였다고 한다(혹은 밤에 호랑이 등을 타고 무사히 갔다고도 한다). 시댁에 와서 아들을 훌륭히 키웠고 평생 수절(守節)하니 나라에서 1467년(세조13) 정려(旌閭)를 세워 후세에 기리 알렸다.
유복자는 감찰(監察)을 지낸 철산(鐵山)이고 손자는 좌의정 국광(國光), 촤참찬 겸광(謙光)이고 대사헌 계휘(繼輝), 7세손인 예학(禮學)의 거두 사계(沙溪) 장생(長生), 정치가인 집(集), 반(槃) 등 조선조 정치․문화인물이 많이 배출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