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6년~1476년) 자는 통보(通甫)이고 호는 수역자(邃易子)이다. 세종23년(1441) 성균진사가 되고 최항(崔恒)의 추천으로 1448년(세종30) 특설 빈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여진족의 침입을 신숙주(申叔舟)와 더불어 정벌하여 의주목사가 되었고 1470년(성종1) 오위도총관 겸 병조판서가 되었다. 단종에게 폐위를 가하고 사육신의 주륙이 있을 때 세조에게 결사의 각오로 임금의 성덕(聖德)이 아님을 간하니 여러 사람이 공의 신변을 걱정하였으나 지난날의 공훈으로 사면되었고 병론 어외책(兵論禦外策)을 아뢰어 1471년(성종2) 좌리공신 양천군(陽川君)에 봉하고 양안(襄安)의 시호를 받았다.
양천(陽川)으로 귀향하여 귀먹고 소경임을 자처하여 동구 밖에 망곡단을 설치하고 매월 삭망에 영월을 향해 배곡하였다. 공의 굳은 마음과 충절을 엿볼 수 있다. 배위는 포은 정몽주의 현손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