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0년~?) 시호는 효장(孝莊)이다. 음사로 사옹별좌(司饔別坐)로 있을 때인 1467년(세조13)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군관(軍官)으로 함길도병마절도사 허종(許琮)의 휘하에 들어가 명을 받고 단신으로 길주에 잠입하여 대의(大義)로서 역(逆)과 순(順)을 설명하여 적장 이주(李珠), 이운로(李雲露), 황생(黃生) 등의 동의를 얻은 뒤 적극적인 지원을 얻어 경성 운위원(雲委院)에서 이시애 일당을 체포하여 난을 평정하는데 결정적 공로로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녹훈되고 길성군(吉城君)에 봉해졌으며 행중추부첨사(行中樞府僉使)에 임명되었고 사후 공조판서(工曹判書)에 추증되고 길주(吉州)의 향사(鄕祠)에 배향되었다. 아들 귀손(貴孫), 경손(敬孫), 공손(恭孫), 종손(終孫) 등 일가(一家) 육장군(六將軍)의 병가(兵家)로서 당대에 명성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