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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허씨] 허종(許 琮)

작성일 : 2019-12-06 11:32

(1434년~1494년) 자는 종경(宗卿) 또는 종지(宗之)이고 호는 상우당(尙友堂)이고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1457년(세조3) 문갑과 3등으로 급제하였다. 1459년 언로를 개방하고 이단을 물리치고 경연을 열 것 등을 상소하여 세조의 신임을 얻어 선전관이 되고 1467년(세조13)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함길도병마절도사로 난을 평정하는데 공헌하여 적개공신(敵愾功臣) 1등에 책록되고 양천군(陽川君)에 봉해졌다. 1469년(예종1) 대사헌, 다음해 병조판서에 오르고 1471년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 4등에 책록되고 오위도총부도총관을 거쳐 예조판서가 되었다. 세조비 윤씨의 국상 때 산릉도감제조, 연주시격(聯珠詩格)․황산곡시집(黃山谷詩集)을 언해, 1487년 이좌판서가 되어 명나라 사신 동월(董越)과 왕창(王敞)의 원접사가 되어 이들로 하여금 동방에 이런 훌륭한 분이 있다는 감탄사를 읊으며 돌아갔다. 1489년 보국숭록대부로 승진하고 양천부원군에 봉해지고 강원도축성사로 축성(築城)․병기를 점검하였고 여가에 경전(經傳)을 잡고 강론하니, 유학(儒學)의 기풍이 크게 진작되었고 다음해 여진족 우디거(兀狄哈)의 침입을 격파하고 북정도원수(北征都元帥)가 되고 이어서 우의정에 올랐다. 의학에도 조예가 깊어 내의원제조도 지냈고, 신찬구급간이방(新撰救急簡易方)을 편찬하였다.
공은 얼굴이 크고 이마가 넓었으며 키가 크고(223m) 수염이 아름다워 바라보면 깨끗함이 신선과 같았고 국가의 대사를 논함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다하고 숨기지 아니하여 우물쭈물하여 바꾸지 않았다. 천품이 고매하고 학문을 힘써서 성리학(性理學)의 심오한 내용을 깊이 탐구하였으며 일상생활하는 기예(技藝)에 널리 통하여 천문(天文)과 지리(地理), 역산(曆算)을 정밀하게 연구하였으며 특히 시문(詩文)에 능하였고 문집으로는 상우당고(尙友堂稿)가 있고 편저에는 의방유취(醫方類聚)를 용약한 의문정요(醫門精要)가 있다. 성종조에 청백리(淸白吏)로 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