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9년) 자는 중안(仲安)이고 호는 석헌(石軒)이다. 음사로 낭천현감(狼川縣監)을 지냈다. 젊을 때부터 뜻이 드높아 큰 절개가 있었고 집안에 있을 때에는 효도하고 우애한다고 이름났고 관청에 있을 때에는 청백함으로 유명하였다. 1455년 단종이 영월로 귀양오자 벼슬을 버리고 영월로 따라가 단종을 수발하였으며 아들 공주판관 허윤공(許允恭), 손자 보령현감 허지(許智)에게 순흥(順興)으로 가서 금성대군(錦城大君)을 도우라고 했다. 1456년 단종이 승하하자 급히 관곽(棺槨) 등을 갖추어 시신을 거두어 엎드려 곡한 다음 엄흥도(嚴興道)에게 관을 지게 하고 뒤따라가 을지산(乙旨山) 서쪽 땅에 묻고 떠났다. 주위에서 “허낭천(許狼川)이 아니었으면 엄호장(嚴戶長)의 충성을 이룰 수가 없었다.”하였다. 또한 태백산에 은둔하여 종신토록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삼절당(三節堂)에 모셔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