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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허씨] 허성(許 筬)

작성일 : 2019-12-06 11:59

(1548년~1612년) 자는 공언(功彦)이고 호는 악록(岳麓) 또는 산전(山前)이다. 1583년(선조1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국(史局)에 들어가 정언, 헌납, 사인을 지내고 이조참의, 대사성, 대사간, 예조․병조․이조 판서를 지내고 인조조에서 찬성(贊成)을 추증하였다. 1590년(선조23) 일본에 통신사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정사 황윤길(黃允吉), 부사 김성일(金誠一) 등과 같이 다녀왔다. 이때 황윤길은 풍신수길(豊臣秀吉)의 침략의도를 지적하였으나 김성일은 침략의도가 없다고 진술하자 그 의견에 반대 침략의 가능성이 있음을 직고(直告)하였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동인(東人)의 주장에 따라 김성일의 의견을 받아들였으니 “사람들은 허성이 자기 당파[동인]에 편들지 않는 것은 장하게 여겼다”고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당시 허성의 보고를 받아들여 준비했다면 치욕적인 난을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선종의 유고(遺敎)를 받은 교서칠신(敎書七身) 또는 고명칠신(顧命七身)의 한사람으로 젊어서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에게서 학문을 전수하였고 천성이 강직하고 충효에 힘썼으며 성리학(性理學)에 조예가 깊었고 글씨도 명필로 소문났다. 저술로는 악록집(岳麓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