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5년~1669년) 자는 계진(季鎭)이다. 음사로 통훈대부 함창현감(咸昌縣監)을 지냈다. 효성과 우애가 돈독하고 시(詩)를 읊기를 좋아하였으며 송설체(松雪體)를 잘 써 필법이 신묘한 경지에 이르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부친 충장공 허완(許完)이 순절함에 벼슬에 뜻을 잃고 송산(松山)에 살면서 한가로이 시와 글씨로 소일하였다. 특히 처남 대제학 용주(龍洲) 조경(趙絅)과 미수(眉叟) 허목(許穆)과 함께 인근 산천을 즐겼다. 미수 허목, 용주 조경, 경기감사 이진(李袗), 이조참의 이회(李禬), 이조참판 이연년(李延年), 응교 조위봉(趙威鳳)이 함께 삼부연폭포(三釜淵瀑布)에 모여 각각 가시(歌詩)를 지은 작품이 있는데 미수가 이것을 전서(篆書)로 쓰고 화공(畵工)으로 하여금 그리게 하여 병풍을 만들어서 집안에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