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8년~1652년) 자는 휘지(徽之)이고 호는 퇴암(退庵)이며 시호는 익정(翼靖)이다. 1607년(선조40)에 음사로 양천현령(陽川縣令)이 되고 인조반정(1623년) 후 안성군수가 되고 예천군수, 이천도호부사, 동경부윤을 거쳐 1636년(인조14) 가선대부 광주목사(廣州牧使)가 되어 “지금 오랑캐가 바야흐로 강성한데 우리가 화(禍)를 불러들이게 하였으니 1년이 못 되어 큰 침공이 있을 것이다.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왕성(王城)을 삼고 군량을 저축하고 기계(器械)를 수리하고 남성(南城)의 보루(堡樓)를 증축하여 적의 침략에 대비해야 한다”하였는데 겨울에 과연 오랑캐가 대거 침략하여 왕이 급히 남한산성으로 피신하고 40일동안 굶주린 빛이 없이 지냈다. 이에 자헌대부(資憲大夫)로 특진, 광주부윤(廣州府尹)으로 승진되고 다음해 형조판서가 되고 한성판윤, 강화유수, 공조판서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