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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허씨] 허원(許 源)

작성일 : 2019-12-06 12:18

(1671년~1731년) 자는 청보(淸甫)이다. 근신(謹愼)하고 후덕한 장자(長者)로 일찍이 학문을 한다고 표방하지는 않았으나 천성(天性)이 도(道)에 가까워 행실과 말이 윤리에 맞으며 선비들을 사랑하고 좋아했다. 구천(龜川) 이세필(李世弼)의 문하에 있을 때 숙종15년(1689년) 숙종이 광주쌍령을 지나다가 충장공 허완(許完)의 정충묘(精忠廟)를 참배하고 그 후손인 현손 허원(許源)에게 벼슬을 내리니 순릉참봉(順陵參奉)이다. 다시 승진하여 금부도사, 예안현감이 되었는데 선정(善政)하는 방백(方伯)으로 알려졌고 천안군수로 있을 때인 1728년(영조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 도순무사(都巡撫使) 오명항(吳命恒)의 종사관으로 적을 격파하여 분무원종공신(奮武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고 청주목사(淸州牧使)로 승차했다. 석성현감(石城縣監)으로 있을 때 세 아들 허집(許集), 허채(許采), 허휘(許彙)가 모두 문과에 급제하니 편지를 보내 경계하기를 “자만하지 말고 벼슬길로 나아감에 뜻을 두지 말며 가슴에 새겨두어 부모의 근심을 끼치지 말도록 하라”하였으며 또한 말하기를 “녹봉을 받은 지 40년이 되었는데 어찌 자손을 위하여 집안 걱정을 하랴”하였다. 그러므로 관직을 사임하던 날에 식량이 떨어질 지경에 이르러도 근심하지 않았다. 6남1녀를 두었는데 아들 사간 집(集), 정언 채(采), 부제학 휘(彙), 사위 현령 심각(沈殼)은 모두 문과에 급제하였고 연안부사 반(槃), 성균진사 계(棨), 경(檠)이니 사람들이 공이 못다 누린 것을 자손이 복을 받는[食服] 징험이라고 말하였다. 옥동(玉洞) 이서(李漵)와 친한 벗이었으므로 그의 동생 성호(星湖) 이익(李瀷)이 묘갈명(墓碣銘)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