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5년~1840년) 훈련도감(訓鍊都監)의 군인으로 온 집안이 열심히 천주교를 봉행하고 바올로로 영세도 받았다. 1839년(헌종5) 기해년 8월 천주교 박해가 크게 일어나 포도청에서 배교(徘敎)를 강요당하고 70대의 곤장을 맞는 등 혹독한 형을 당하였으나 일평생 천주교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라에서 금하는 교(敎)를 믿는 군인이라 한층 고문이 심하여 배교한다고 하였으나 마음에 죄를 뉘우쳐 다시 감옥에 갔다. 돌이키는 증표로 감옥의 오물을 한 사발 마시게 하고 십자고상(十字高像)에 엎드려 절하매 포장(捕將)은 매를 쳐서 드디어 1839년(헌종5) 12월 16일 숨을 거두니 성인품(聖人品)에 올라 지금 절두산 성단에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