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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이씨시조(旌善李氏),이양혼(李陽焜),정선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4 22:22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정선이씨(旌善李氏)의 시조(始祖) 이양혼(李陽焜)은 송(宋)나라 안남국(安南國) 남평왕(南平王) 건덕(乾德)의 세째 아들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시원(始原)은 그가 북송(北宋) 휘종(徽宗)때 국난(國亂)을 피하여 우리나라의 경주(慶州)에 정착(定着)하면서 부터이다. 그 후 9세손 우원(遇元)이 국자생원(國子生員)으로 상서 좌복야(尙書左僕射)에 추봉되어, 정선(旌善)으로 이거(移居)하였으므로 후손들이 정선(旌善)을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정선(旌善)은 강원도 남동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잉매현(仍買縣)인데, 통일신라 경덕왕 때 정선이라 개칭하여명주(溟洲)의 영현(領縣)이라 하였고, 1018년(고려 헌종 9) 그대로 명주의 속현으로 하였다가 군(郡)으로 승격시켰다.

1895년(조선 고종 32) 5월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 충주부(忠州府) 정선군이 되었고, 1896년 도제(道制) 실시에 따라 다시 강원도 정선군(정선군)으로 환원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우원의 아들 형규(亨奎)가 18세에 등과하여 고려 충렬왕(忠烈王)때 수문전 태학사(修文殿太學士)에 올랐으며, 후손 자생(自生)이 군기시윤(軍器시尹)을 지냈다.

그 외 대호군(大護軍)을 지낸 희성(希聖)과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한 의(誼)가 뛰어났고, 득량(得良)은 부사(府使)를 역임하여 가문(家門)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정선이씨(旌善李氏)는 남한(南韓)에 2,59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정선이씨조상인물

이난(李 蘭) 자(字)는 군욱(君郁). 고려 때 판서(判書)를 역임하였다.

이무정(李茂貞) 자(字)는 경부(敬夫). 고려(高麗) 때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냈다.

이계운(李啓運) 자(字)는 보명(甫明). 고려조에 부사(副使)를 지냈다.

이번(李 蕃) 자(字)는 만옥(萬玉). 고려 때 시중(侍中)을 역임하였다.

이선(李 善) 고려(高麗)때 태사(太師)를 역임하였다.

이희민(李羲旼) 자(字)는 태명(泰明). 고려에서 시중(侍中)을 지냈다.

이의민(李義旼) 초명은 의방(醫方). 고려조(高麗朝)에서 평장사(平章事)ㆍ판병부사(判兵部事)등을 역임하였다.

이성순(李性純) 자(字)는 이경(彛卿). 고려조(高麗朝)에 상서(尙書)를 역임하였다.

이지순(李至純) 고려 때 대장군(大將軍)을 지냈다.

이지광(李至光) 고려조(高麗朝)에 장군(將軍)을 역임하였다.

이연(李 蓮) 자(字)는 자군(子君). 고려 때 밀직사(密直使)를 지냈다.

이우원(李遇元) 자(字)는 태초(太初). 고려(高麗)때 상서 좌복야(尙書左僕射)에 추증(追贈)되었다.

이형규(李亨奎) 자(字)는 문서(文瑞). 고려 때 첨의중찬(僉議中贊)ㆍ수문전 태학사(修文殿太學士)등을 역임하였다.

이석덕(李碩德) 자(字)는 사부(師夫). 고려 충숙왕 때 지의주사(知宜州事)를 지냈다.

이안(李 安) 자(字)는 이소(履素). 고려 때 유수(留守)를 지냈따.

이경(李 莖) 자(字)는 수보(秀甫). 고려 때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를 역임했다.

이초(李 初) 자(字)는 일원(一元). 고려(高麗)에서 중랑장(中郞將)을 지냈다.

이우(李 瑀) 고려조(高麗朝)에 중정대부(中正大夫)로 진주 안무사(晋州安撫使)를 역임하였다.

이용(李 龍) 자(字) 정중(正中). 고려에서 정순대부(正順大夫)로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를 지냈다.

이분(李 芬) 고려(高麗)때 부사(副使)를 지냈다.

이자생(李自生) 자(字)는 천수(天粹). 고려 말에 중현대부(中顯大夫)로 군기시윤(軍器寺尹)을 역임했다.

이존실(李存實) 자(字)는 옥여(玉汝). 고려 때 부사(副使)를 지냈다.

이익손(李익孫) 조선조(朝鮮朝)에 사정(司正)을 역임하였다.

이숭복(李崇福) 자(字)는 수지(綏之). 조선 때 부장(副將)을 역임하였다.

이희성(李希聖) 자(字)는 인백(仁伯). 조선 때 대호군(大護軍)을 지냈다.

이의(李 誼) 자(字)는 정중(正仲). 조선(朝鮮)에서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이백수(李白壽) 자(字)는 노수(老叟). 조선 때 현령(縣令)을 지냈다.

이신(李 信) 자(字)는 경중(敬仲).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이익정(李益禎) 자(字)는 원성(元聖). 조선조(朝鮮朝)에 수문장(守門將)을 지냈다.

이백록(李百祿) 자(字)는 군황(君貺). 조선 때 판관(判官)을 지냈다.

이득량(李得良) 자(字)는 광문(光文). 조선(朝鮮)에서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이정운(李正運) 자(字)는 윤지(允之). 조선 때 첨정(僉正)을 지냈다.

이효백(李孝伯) 자(字)는 행윤(行潤). 조선조에 봉사(奉事)를 지냈다.

이겸(李 謙) 자(字)는 명길(鳴吉). 조선 때 권관(權管)을 지냈다.

이두성(李斗星) 조선(朝鮮)때 영장(瀯將)을 지냈다.

이재윤(李載潤) 조선조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이추성(李樞星) 자(字)는 계복(桂馥). 조선 때 찰방(察訪)을 지냈다.

이명선(李明善)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이태유(李泰裕) 자(字)는 운학(雲學).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이성삼(李成三) 조선(朝鮮) 때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이동후(李東厚) 조선(朝鮮) 때 첨정(僉正)을 지냈다.

이병연(李秉淵) 조선조(朝鮮朝)에 첨정(僉正)을 역임하였다.

이성모(李成模) 조선 때 첨정(僉正)을 지냈다.

이행룡(李行龍)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이상연(李尙淵) 조선에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이만석(李萬碩) 조선 때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역임아혔다.

이종춘(李宗春) 조선(朝鮮)때 첨정(僉正)을 지냈다.

이동춘(李東春) 조선조(朝鮮朝)에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