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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 윤필상(尹弼商)

작성일 : 2018-07-26 11:34

1427(세종 9)~1504(연산군 10) 자(字)는 양좌(陽佐), 참판(參判) 경(坰)의 아들. 1447년(세종 29)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1450년(세종 32) 추장문과(秋場文科)에 급제, 1453년(단종 1) 저작(著作)이 되고, 1455년(세조 1) 호조 좌랑(戶曹佐郞)으로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오르고 서연관(書筵官)이 되었다.

1457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 1463년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된 후 도승지(都承旨) 등을 역임하여 세조(世祖)의 측근에서 왕명의 출납을 잘 처리하여 총애가 두터웠다.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에 도승지로 왕명을 신속히 처리하여 우참찬(右參贊)에 특진, 적개공신(敵愾功臣) 1등으로 파평군(坡平君)에 봉해지고, 이해 강 순(康 純) 등이 파저강(婆猪江)의 야인(野人)들을 토벌하자 왕명으로 군진에 가서 개선군을 위유(慰諭)했고, 이듬해 안주 선위사(安州宣慰使)로서 명나라 사신을 맞았다.

이해 세조가 죽자 3년간 광릉(光陵:세조의 릉) 수묘관(守墓官)으로 있었고, 1471(성종 2) 경상도에 한재(旱災)가 들어 기근이 심하자 우찬성(右贊成)으로 진휼사(賑恤使)가 되어 기민을 구제, 다시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에 겸직 발령되어 이듬해까지 기민을 구제 한 공으로 모의(毛衣)․녹비화(鹿皮靴)를 하사받았다.

1474년 이조 판서(吏曹判書)․의금부 당상(義禁府堂上)을 겸직하다가 한명회(韓明澮)․노사신(盧思愼) 등 권신들이 이조(吏曹)의 권한인 인사권(人事權)에 간섭이 심하므로 분개하여 사직하고 일시 은퇴 했으나 곧 복직, 좌찬성(左贊成)으로 주청사(奏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던 도중 건주위(建州衛) 야인들의 정세를 자세히 탐지하여 보고했고, 이듬해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를 거쳐 우의정(右議政)에 올랐다.

1479년 명나라가 건주위를 토벌할 때 좌의정으로서 서정 도원수(西征都元帥)를 겸직, 5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건주위를 토벌했으며, 1481년 사은사(謝恩使)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온 뒤 1484년 영의정(領議政)에 올라 부원군(府院君)에 진봉(進封), 이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 1496(연산군 2)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앞서 성종조(成宗朝)에 연산군(燕山君)의 생모 윤씨(尹氏)의 폐위를 막지 못했다는 죄로 추죄(追罪)되어 진도(珍島)에 유배, 사약(賜藥)을 먹었으나 죽지않아 가졌던 독약을 먹고 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