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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전씨] 전흥(田 興)

작성일 : 2019-08-20 12:28

1376년(고려 우왕2)-1457년(세조3) 시호, 경호(諡號 敬胡)

일찍 군에 입문 뜻을 세워 왔는데 1398년(태조7) 의흥3군부(義興三軍府)의 진무소 진무(鎭撫所 鎭撫)로서 절제사 이방원 군영의 도진무가 되어 1,2차 왕자의 난 때 공을 세워 1411년 정사 좌명원종1등공신으로 책록 되어 원종공신전(元從功臣田)과 록권(祿券)을 하사 받은바 있고 같은 해 대호군(大護軍) 직에 있을 때는 장흥부사 김기(長興府使 金頎)가 정사원종공신(定社元從功臣) 의 반열에 참여하기를 원함으로 왕명에 의해 김기의 원종(元從)여부를 심사 원종이 않임을 왕에게 보고한일도 있었으며 1410년 공(公)이 중군호군(中軍護軍) 재임시 태종(太宗)의 명으로 왕이 내려주는 술을 가지고 가서 북벌(北伐) 장수들을 위로하였고 1412년에는 충청도의 곡식상황을 살폈고 경상도 부산포(富山浦)에 내박(來泊)중인 왜선(倭船)의 동태를 살펴 왕에게 보고하기도 하였다. 1413년 순금사 대호군(巡禁司 大護軍)으로 있을 때 경기와 충청도에 가서 군마(軍馬)를 기를 만한 곳을 상지(相地) 하기도 하였고 1414년에는 진도목장(珍島牧場)을 살펴 군마용목장(軍馬用牧場)으로 부적함을 왕에게 보고한일도 있었다. 1416년 의금부 진무(義禁府 鎭撫)로 있을 때 민무구(閔無咎), 민무질(閔無疾)등 민씨편을 옹호했다하여 태종(太宗)의 노여움을 사기도 하였으나 같은해 12월 통정대부 형조참의에 임명되었고 1418년에는 의금부 수장(首長)인 의금부제조(義禁府提調) 재임시 태종(太宗)이나 세종(世宗)의 측근신하(側近臣下)가 되어 국문(鞠問)과 강무(講武) 등 중요한 일은 공(公)이 진행토록 명 받았다. 1430년(세종12) 원주목사(原州牧使) 1434년 홍주목사(洪州牧使) 등 외직으로 계셨고 같은해 형조참판(刑曹叅判)에 올랐으며 또한 가정대부 경창부윤(嘉靖大夫 慶昌府尹)으로서 하정사(賀正使)가 되어 명(明)나라를 다녀와 중추원사(中樞院事)에 임명되었다. 1435년(세종17)지금의 서울시장인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에 임명되었고 1439년(세종21)에는 중추원사에 재임되어 초헌(軺軒) 을 타는 원로훈신(元老勳臣)이 되었다. 나이가 차 중추관직(中樞官職)을 치사(致仕) 하고 고향인 석성(石城)에서 만년을 보내고 있었는데 1450년(문종즉위년) 매월 음식을 하사 받은 은록(恩祿)을 입고 지냈으나 1457년(세조3년) 4월24일 82세로 타계(他界)하시니 나라에서 시호(諡號)를 경호(敬胡)로 내리고 예장(禮葬)으로 치제(致祭) 하였다.